[ HaHaHa ]

열넷에 찾은 맛-진희복군

webdress 2004. 11. 19. 09:47

내 나이 내년에 3x

도대체 뭘하면 산건지..........

삶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아이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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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10대 후반이 돼야 자신의 진로를 어렴풋하게나마 결정한다. 20대 후반 이후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더라도 진로에 대한 고민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이런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어린 나이에 뛰어난 능력으로 진로를 이미 결정한 사람들이 부럽고 신기하게 마련이다.

올해 열네 살인 진희복군은 요리사가 되고 싶다. 세계적인 요리학교 ‘르 코르동 블루’(프랑스 파리)의 한국 분교인 ‘르 코르동 블루 숙명아카데미’에 지난 9일 최연소로 합격했다. 초등학교를 월반해 마친 후, 중·고등 과정을 검정고시로 졸업했기에 가능했다. 이곳에서 2년 과정을 끝내면 호주로 유학갈 예정이다. 요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감당할 수 있다는, 어른스런 꼬마 요리사의 당찬 꿈이 진지하다.

#갈 길이 먼데, 돌아갈 필요 있나요?

진군이 기억하기로 자신이 요리 또는 음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네 살 때였다. 맛이 궁금해 구더기를 집어 먹은 게 출발점이었다. 진군의 어머니 양월모씨(47)는 농담반으로 “너는 미식가가 되겠다”고 말했다. 그런 아들이 세계적인 요리사를 꿈꾸며 한 손엔 칼을, 다른 한 손엔 냄비를 들었다.

“요리에 흥미를 확실하게 느낀 것은 열한 살 때였어요. 어머니가 아프셔서 죽 만들어 드리고 집안 청소도 했거든요. 그런 일이 점점 재밌어지더라고요.”

음식을 만들 때 냉장고 안에 있는 과일·야채 등을 활용, 아기자기하게 꾸미는 솜씨가 어머니의 눈에도 남다르게 보였다. 어머니 양씨는 한 가지 능력을 부각시켜 주는 것이 아들의 인생을 위해서도 좋다고 생각, 적극 밀어주기로 했다. “판소리, 태권도, 바이올린 등을 시켜봤는데 희복이는 손으로 만져서 꾸미는 것을 가장 잘 했어요. 그래서 ‘요리학원에 다녀보라’고 했죠. 열심히 다녔어요. 자기 용돈 내놓고 홈바 만들어 달라고 할 정도로 푹 빠지더군요.”

진군은 올해 양식조리사 자격증과 조주사(바텐더) 자격증을 땄다. 열네 살이면 중학교에 다닐 나이지만 고등학교 과정까지 서둘러 마치고 요리학교에 입학했다. 요리하는 것이 좋아 남들이 보통 거치는 과정을 뚝 잘라 생략한 셈이다.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굳이 돌아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 진군의 생각이다.

#힘든 일이 왜 없겠어요

어린 나이에 너무 빨리 진로를 결정한 것은 아닌지 물었다. 진군은 “이왕 할 거면 일찍 하는 게 낫잖아요”라고 하면서도 “왜 힘든 일이 없겠어요”라고 말한다. “가끔 학교가 그립기도 하지만 남들처럼 학교를 다니지 않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별로 없어요. 월반하고 검정고시로 학교 마친 것이 어떻게 보면 편하거든요. 다만 사제지간의 경험을 많이 못해서 친구들보단 마마보이 성향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진군은 어머니의 눈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에 대한 분석을 또박또박 내놓는다. “검정고시 준비할 때부터 형들, 아저씨·아주머니들과 어울려서 어른 세계를 알게 된 것 같아요. 부모님이 걱정할 정도로요. 친구들도 애늙은이라고 해요. 음식도 명란젓, 신김치를 좋아하거든요. 히히.”

또래 친구는 교회에서 사귄 몇 명이 전부. 외로움을 견디고 요리사의 길을 파게 만드는 힘은 ‘잘 살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란다. “학교 앞에서 100원 넣고 미니오락을 하는 애들 보면 ‘왜 그럴까’ 싶어요. 돈날리고 시간 버리는 거잖아요. 나중에 잘 살려면 참고 고생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나처럼 당장은 외롭겠지만 그렇게 몇 년을 노력하면 나중에 자기 자리에서 베스트가 될 수 있잖아요. 성공하고 싶어요. 부모님도 제가 모시고 살고요.”

1주일에 화·목요일은 수업 6시간을 듣기 위해 새벽부터 고속철을 타고 대전에서 서울로 온다. 올 때마다 바퀴 달린 여행가방에 짐이 한 가득이다. 수업이 없는 날은 예·복습, 토플공부, 요리 연습 등을 한다. 자기 길을 찾아가는 일은 어쩌면 입시보다도 훨씬 어려운 것이다.

#아직 백지상태인걸요

진군은 자신의 미래를 세 단계로 꿈꾸고 있다. 최고의 조리장이 된 후, 레스토랑을 경영하고, 최종적으로는 호텔 경영 및 총주방장을 동시에 하는 것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이제 요리학원에 입학한 것일 뿐, 자신은 아직 아무것도 아니라고 진군은 말한다. “코르동 블루에 들어와 배워보니 칼쓰는 법 등 기초부터 엄격하고, 이전 요리학원에서 배운 것과 달라요. 새로 시작하는 느낌이에요.”

호기심 많은 꼬마 요리사 진군은 독특하고 예쁜 음식이 주된 관심사다. 그래서 가끔은 맛이 이상한 음식을 만들기 일쑤다. “제 장점은 기이할 정도로 톡톡 튀는 음식을 가끔씩 만든다는 거예요. 독특한 것에 관심이 많다보니 가끔 원하지 않는 맛이 나올 때도 있어요. 그래도 남들과 똑같은 걸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 한식보다는 퓨전을 하고 싶어요. 예술적이고, 색채도 다양하게요.”

어린데도 자신의 상황에 대해 과장하는 법이 없는 진군은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진지하다. 발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화려한 음식의 맹점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너무 정확해서 어른들도 깜짝 놀랄 정도다. “요리에 대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이 있다면 ‘새롭게 바꿔야 한다는 것’이에요. 예전 것을 따라가는 것보다 항상 새로운 걸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집착하는 게 오히려 고정관념이죠.”

〈글 임영주기자 minerva@kyunghyang.com

〈사진 김영민기자 viola@kyunghyang.com